logo

목회 칼럼

 

지금 우리가 꼭 붙잡아야 할 것

  • 유은규 목사
  • 조회 : 508
  • 2020.09.12 오전 10:05

  목회자 세미나에 갔다가 조별 모여서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교인이 다 떠나간 목사, 늦은 나이에 교회를 개척한 목사, 적은 수의 청년부를 부흥을 시켜야 할 책임 맡고 막 부임한 부목사,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해야 하는데 노후대책이 없어서 염려하는 목사 등등... 이 분들의 사정과 형편을 들어보니 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중에 누가 제일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교인이 떠나 간 목사도, 늦은 나이에 개척한 목사도, 노후 대책 없이 은퇴를 앞둔 목사도 어렵지만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한 목사는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는 목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위로와 평안, 능력과 축복의 예수님과 정말로 동행한다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렵고 힘들다 보니 많은 성도들이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직장이 힘들게 하며, 경제가 못살게 하고 코로나19가 불안하게 한다.”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정말로 어렵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붙잡아야 할 것을 붙잡지 않고 붙잡지 말아야 할 것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1905,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때, 러시아는 거리 이름, 물건 이름, 심지어 음식 이름까지 성경에 있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신앙의 모습이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을 그들의 구세주와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은 형식적인 신자였습니다. 그러다가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125만 명의 황족과 귀족들이 영하 40도의 시베리아로 피난가면서, 황금과 보석을 수 백 대의 화차(貨車)에 싣고 떠났지만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는 도중에 대부분이 죽어 버렸습니다. 만일 그들이 황금 보석을 실고 가는 것 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고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면 살 길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톨스토이가 <나의 회심>이라는 글에서 나는 5년 전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 드리고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그러자 이전에 바라던 것을 이제는 바라지 않게 되었고,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이 이제는 시시하게 보이고, 이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이제는 작게 보이고, 이전에 찾던 행복의 무지개가 허무함을 알게 되었으며, 거짓으로 자신을 꾸민 것이나, 여인들과 즐겁게 지내던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돌아보면 코로나와 장기적인 경기침체 때문에 다들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성도들이 꼭 붙잡아야 할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붙잡고 신뢰하며 동행하는 것입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조회
  • 1
  •  지금 우리가 꼭 붙잡아야 할 것
  • 2020-09-12
  • 유은규 목사
  • 509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