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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29年 (昭和 4)

  • 김학도
  • 조회 : 1138
  • 2017.08.31 오후 06:09



1929年 (昭和 4)

11月 3日에 일어난 光州學生抗日運動은, 31運動 以後 最大의 學生運動이었다. 光州學生抗日運動은, 10月 30日 午後, 光州에서 羅州로 향하는 通學列車内에서, 日本人 學生이 韓國人 女學生을 놀리는 事件이 發端이 되었다. 警察과 教育 当局이 偏頗的으로 日本人 學生에게 유리하도록 事件을 處理하였기 때문에, 光州市内의 많은 學校의 學生들의 憤怒가 爆發하여 곧바로 全國 各地로 波及했다. 1930年 3月까지의 参加한 학교가 194校, 参加한 學生이 約5萬4000 名, 投獄500餘 名, 無期停學 2千330餘 名이었다.

8月4日、臨時政府가 國務院을 改編하고 金九를 國務領으로 選出했다. 呂運亨이 7月10日에 上海에서 檢擧되어 國内로 護送되어, 1932年까지 大田 刑務所에 收監되었다. 1919年 11月, 呂運亨은 日本政府의 招請을 받았을 때, 東京에서 [朝鮮은 建國以来 自主로 시작하였고, 自主로 發展했다. 다만 朝鮮이 獨立한 後에야 말로 世界平和가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韓國獨立의 正當性을 明確한 論理로 演説하여, 日本의 朝野를 制壓한 적이 있다.

6月 24日, 總督府 賂物事件으로 山梨半造 總督이 拘束되고, 8月 17日 後任으로 第3代 總督이었던 사이토 마코토(斉藤實)가 다시 任命되었다. 11月 8日, 京城大學을 筆頭로 京城高等普通學校(旧制 中學校)의 모든 學生이 獨立萬歳를 외치며 同盟休學을 決行한다. 12月 12日, 平壌 崇實専門學校를 中心으로 市内 全中學校 1600餘 名이 萬歳 시위를 強行했다. 10月 31日, 朝鮮語研究會가 朝鮮語 辞典編纂會를 組織했다.

[韓日併合]後 朝鮮에는 三大貧民層이 생겼다. 즉 農村의 春窮 貧民과 火田民, 그리고 土幕民이라고 불리는 都市 貧民이었다. 特히 土幕民은 日本帝國의 強制占拠의 所産物이다. 저들은 大部分 日本帝國의 [土地調査事業]과 日本農民의 朝鮮 移住등으로 農土를 빼앗기고 農村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다. 이들 中에서 一部는 日本의 勞働市場에, 또 다른 一部는 旧満州로 移住하거나 山 속에 들어가 火田民이 되었고, 나머지는 都市에 흘러들어가 土幕民이 되었다. 그들의 数는 1928年의 1143 名에서 1938年에는 1만6천6백44 名으로 急増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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