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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십자가 십자가

  • 유은규 목사
  • 조회 : 2214
  • 2012.04.14 오후 02:17

우리가 살게 된 것은 십자가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시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은 십자가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십자가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십자가 때문이며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고 영원에 잇대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도 십자가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여 당신이”라는 제목의 시를 통하여 송명희 시인은 그 십자가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여 당신이 십자가를 지시고 어린 양처럼 끌려가심이 어찜이니이까 어찜이니이까


주여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어 강도처럼 죽으심이 웬말이니이까 웬말이니이까


주여 당신의 무덤이 악인의 무덤 같이,


당신의 묘실이 부자의 것 같이 되었나이다


주여 당신이 죄인처럼 되심이 어찜이니이까 어찜이니이까


이 시는 바로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였는데 우리 주님께서 대신 감당해 주셨기에 오늘 우리는 이렇게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본래 십자가는 로마의 사형틀입니다. 그 중에서도 십자가형은 인간이 겪는 고통 중 최악입니다. 로마제국은 극형이 선고된 죄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캔버스대학 해부학교수 하워드 매츠키 교수는 십자가형의 고통을 의학적으로 이렇게 분석하였습니다. “극형이 선고된 몸의 체중이 두 손바닥에 박힌 못에 매달려지기 때문에 살이 찢겨 많은 피를 쏟고 통증이 심하다. 또한 가슴으로부터 팔에 이르는 근육들이 극도로 팽창하여 호흡장애를 가져온다. 숨을 내쉴 수가 없어 근육에 산소 공급이 안 된다. 그래서 심한 경련을 일으킨다. 이런 증세를 조금이라도 참으려고 죄수는 몸을 위로 치켜 올리려 하는데 이때 마다 체중은 발등에 꽂힌 못에 의지하므로 그 고통은 더욱 더 가중된다.”


오늘 종려주일에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고난 받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습니다.

겸손의 종으로서 우리들을 위해, 침묵적 고난으로 들어가시기 위하여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루 하루 청결의 날(월), 교훈의 날(화), 침묵의 날(수), 만찬의 날(목)을 지나 금요일 수난의 날에 그 치욕의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위하여 대속적인 죽음을 죽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간은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며 한 주간을 보내도록 합시다. 이 한 주간 속에서 그분이 나를 위해 행해주신 일들, 그 은혜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며 주님과 함께 골고다로 갑시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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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자가 십자가
  • 2012-04-14
  • 유은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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