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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웨스터민스터 소교리문답 제16강, 제33문 [칭의]

  • 최성훈
  • 조회 : 1981
  • 2013.07.04 오후 04:41

 

비가 오지 않는 장마라니...

날은 덥고 습해서 하루나기가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모두들 건강 조심하시고 강건하게 주일날 뵙길 바라요.

 

매주 수요일 모일 때마다 참 감사합니다.

함께 공부하고 기도하고 나누는 가운데

더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하시고, 나눔 가운데 가지고 있던 고민들이 위로를 얻고

삶의 문제들이 교리 공부와 함께 적용되는 일들...

 

매주 올리는 저의 해설은 그 감동도 그 과정도 담을 수 없어 안타깝네요.^^

하지만 매주마다 수고하시며 해설을 읽고 나눠드린 프린트물을 공부하시는

모든 교사분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잊지 않습니다.

 

더불어 이제 학생회 수련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마음으로  강사분들과 프로그램, 그리고 날씨와 환경, 학생들의 준비된 마음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평화~~~~~

 

 

----------------------------------------------------------------------------해설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이 땅에서 얻는 유익은 칭의와 양자됨 그리고 성화입니다.(32) 오늘은 그 유익 중에 칭의 즉 의롭다 하심에 대해 배워보겠습니다.

 

  

이번 공과를 들어가기 전, 우리는 지금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어디쯤을 배우고 있는지를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성령의 효과적인 부르심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부르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외적인 부르심 곧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음의 소식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내적인 부르심 즉 성령님께서 택자에게만 주시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효과적인 혹은 유효적인) 부르심이 있습니다.

 

성령의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 쉽게 말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이 땅에서의 유익은 칭의와 양자됨 그리고 성화라는 것을 지난 시간까지 배웠습니다. 오늘 배울 부분은 바로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된 자에게 주어지는 칭의 곧 의롭다 하심입니다. 그렇다면 칭의란 무엇일까요? 아래의 문답을 소리내어 묻고 답해봅시다.

 

칭의란 무엇인가?

33: 칭의는 무엇입니까?

: 칭의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로서,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해 주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 받아 주는 것인데, 이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계산해주기 때문이며, 칭의는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1.예수님과 신자의 위대한 교환

 

 
 

가장 먼저 칭의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부분은 조금 뒤에 다루도록 하고, 칭의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위의 도표를 그려보았습니다. 칭의는 예수님과 신자의 위대한 교환입니다. 신자는 죄에 대한 책임과 형벌을 그리스도께 드립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인이 져야할 죄의 형벌과 책임을 대신 지십니다. 이것을 죄용서라고 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통해 죄를 이기시고 얻으신 의를 신자에게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의의 전가입니다. 이러한 양방향의 교환 모두를(점선으로 포괄하고 있는 부분을) ‘칭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양방향의 교환은 죄를 지은 인간의 숙명적 난제를 해결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인간의 난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죽을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책임을 해결해주셨습니다. 두 번째 죄인인 인간의 난제는 율법 전체를 순종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켜야 얻어지는 의를 인간은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완전하신 순종으로 얻으신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죄용서가 인간의 죄를 용서하사 죄의 책임을 없애신 일이라면 의의 전가는 거기에 더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지어주신 사건입니다. 이는 모세 오경에서도 나타납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신 하나님은 자신을 만나는 방식을 성막으로 나타내 보이시고 레위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제사를 통해 그들의 죄를 씻도록 하십니다. 그리고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명령을 통해 거룩한 의의 형상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사법을 통해 구분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십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결국 이 거룩에 이르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단번에 드리신 완전한 제사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의를 주셨고(칭의) 그러한 의를 통해 택자를 양자 삼으십니다.(다음과에서 배울 것에요.^^)

 

정리하자면 칭의는 하나님이 전적인 은혜로서 주신 죄용서와 의의전가입니다.

 

2.칭의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       )의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의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그래서 칭의를 얻는 방법은 오직 (       )뿐입니다.

 

칭의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입니다. 여기서 값이 없다는 것은 헐값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값을 치를 엄두가 나지 않는 엄청난 값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치르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수백 만 번을 고쳐 죽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의를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으로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칭의를 얻는 방법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뿐입니다.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것을 인정할 때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뿐 입니다.

 

그런데 아담 이후로 타락한 인간 존재는 계속해서 나의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의는 행위에서 난 의와 믿음으로 난 의가 있습니다. 행위에서 난 의는 내 힘으로 얻어낸 의로움입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의로움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은 자기기만입니다. 타락한 아담 때부터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을 의존하도록 만드신 피조물임을 망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려는, 의에 이르려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살펴보면 이러한 행위를 통한 의가 추구가 너무도 많습니다. 새벽기도, 십일조, 주일성수와 교회봉사를 통해 남들보다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기 의가 넘쳐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가 될 수 없습니다. ‘는 타락한 인간의 내부에는 없는 것입니다.

 

의는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의롭다 인정되셔서 죄의 권세인 사망을 꺽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하는 믿음으로만 주어집니다. 그래서 의인은 선한 행위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예수님만이 의로우심을 알고 주님께 믿음의 손을 내밀 때 예수님은 죄인의 빈 손에 자신의 의를 채워주십니다. 이것을 의의전가라고 합니다. 잠깐 아래와 같은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살펴볼까요?

 

Q: 믿음으로 의를 얻었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어 드렸기에 의로움을 얻었다는 말이 아닌가요?

A: 아닙니다! 믿음 역시도 성령께서 우리를 설득하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의 효과적 부르심으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은혜로 주신 믿음을 근거로 의를 얻은 것입니다. 이렇게 칭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을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어거스틴 때 펠라기우스, 칼빈 이후 알미니안, 2차 대각성 운동 때의 찰스 피니, 현대에 와서는 노만 빈센트 필, 로버트 슐러, 조엘 오스틴 같은 사람들은 인간에게는 의를 행할 능력이 있고(심지어는 완전히 타락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긍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배운 31,32문에서는 믿음은 성령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믿음은 조건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설득하여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사용하여 의를 주시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의를 받아내기 위한 컵(수단)이지, 조건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기에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이고 선물로 주신 믿음을 사용하여 의를 얻게 하신 것이니 칭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이신칭의교리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나의 힘으로 하나님을 믿어 드리는 것으로 여기고 그분께 믿음을 조건으로 축복을 협상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중세부터 근대와 현대까지 이르는 행위구원론자이며 더 나아가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거짓의 자녀입니다.

 

3.칭의는 *법정적 용어입니다.

*법정에서 선언한 판결로, 실제로 그가 죄가 있든 없든 죄가 없다는 판결을 내려 죄인의 책임을 제거해주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실제로는 없는 있다고 쳐 주는 것입니다.

 

칭의는 법정적 용어입니다. 그 설명은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자신마저도 아는 추악한 죄로 인해 사형언도를 기다리는 죄인에게 심판자인 판사가 자신의 직권으로 무죄를 선언한다면 그 죄인의 기쁨과 감격은 어떠하겠습니까? 칭의를 얻은 자는 이와 같은 감격과 기쁨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5:8)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해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렇게 칭의 받은 자는 법정적 선언으로 의인이 되었을 뿐 삶이 의롭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후 양자됨과 성화의 지속적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칭의를 받은 자는 결코 다시 죄에 빠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얻을 수 없는 의의 판결을 받은 자가 돌아서서 다시 이전 같은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거짓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참 믿음은 죄에 대한 후회를 포함합니다. 그러니 예전 죄의 자녀였을 때와 같이 맘 편히 죄를 즐겨 짓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죄를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물론 완전히 죄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진정으로 죄를 미워하고 후회하는 것은 중생한 자에게만 드러나는 증거이지요.

 

오늘 공과를 정리하자면

1.칭의는 위대한 교환이다. 죄인은 자신의 죄의 형벌과 책임을 예수님께 드리고 예수님은 이를 대신 짊어지시고 자신이 이룬 완전한 순종의 의를 인간에게 주신다. 이것이 바로 칭의이다.

2.칭의는 값을 치를 수 없는 인간을 위해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려 사신 것으로 인간에게 거저 은혜로 주신 것이고 따라서 칭의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얻어진다.

3.칭의는 법정적 용어로서 우리의 삶에 죄가 여전하며, 의가 없지만 의가 있는 것으로 여겨주신 놀라운 사건이다. 이 감격적이고 놀라운 신앙의 경험은 이후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하며 이전과 같은 죄를 짓지 못하게 한다.

 

*저는 이 칭의의 엄청난 가치를 거룩한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온 인류를 사하고도 남을 엄청난 의를 택자들에게만 주신 이 놀라운 은혜는 죄인을 의롭게 하고도 너무나도 넘치도록 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그분의 은혜에 저항할 수 없는 것입니다.(불가항력적 은혜) 그분을 피해 바다 끝에 거한다고 해도 그분의 넘치는 은혜는 결국 우리를 그분의 사랑으로 이끌고야 마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죄 없으신 그 분, 창조자이신 성자께서(1)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이 놀라운 사실이 거룩한 낭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칭의 교리는 이렇게 은혜입니다.

 

 

 

토의문제

1.‘칭의에서 예수님과 신자의 위대한 교환은 무엇인지 설명해봅시다.

 

2.‘이신칭의란 무엇입니까?

 

3.칭의가 법정적 용어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4.칭의는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집니까? 그리고 나는 그 가치를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5.이번 공과공부가 나에게 은혜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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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스터민스터 소교리문답 제16강, 제33문 [칭의]
  • 2013-07-04
  • 최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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