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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이 쓸쓸하게 걸려 있는 한 장의 寫眞

  • 김학도
  • 조회 : 1438
  • 2017.11.15 오후 05:07

외로이 쓸쓸하게 걸려 있는 한 장의 寫眞

異國 山鄕의 차가운 旅館 벽에 六十五年間


崔 吉時 (前 中學校長)


綠風會 編集者 曺 京植 日譯 

                金 學道 韓譯

   우리 부부는 지난 (2010년) 가을 즈음에 가고시마(鹿児島)를 여행하고 왔다. 일본 가고시마의 미야마(美山) 조선도공(朝鮮陶工)의 후예인 심수관 가(沈壽官 家)를 찾아 사츠마야키(薩摩焼)의 도요지(陶窯地)와 그 도자기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전시관과 沈수관가의 방문 일정이 예정보다 빨리 끝났기 때문에, 이곳에 온 김에 그 근처도 돌아볼 것을 생각하고 관광 안내소에 연락한 결과, 치란(知覽)이라는 낯선 땅을 추천 받아, 관광 안내 지도의 한쪽 구석에 있는 치란을 찾아서 토미야(富屋)라고 하는 여관에 전화로 예약했다.

   꾸불꾸불한 산길을 걸어서 가까스로 도착한 것은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치란은 인적이 드문 산 속의 작은 마을이었다. 나그네로 길을 헤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현관 밖까지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면서 기다리던 여주인 (하츠요)(ハツヨ)씨가 우리를 보고 반기며 기쁘게 맞아 주었다.

   오늘 손님은 우리 부부가 유일한 고객인 초라한 작은 여관이었다. 현관으로 들어가니 어슴푸레한 복도 벽에는 완전히 특공대와 반딧불의 사진 액자로 장식되었고 또 그와 관련된 예기의 문구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한국인인 줄로 알게 된 여주인 하츠요(ハツヨ)씨는, 이 여관이 옛날 한 조선인(朝鮮人)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곳임을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치란(知覽)에는 제2차 대전 때 "가미카제(神風)"라는 자살공격(自殺攻擊)으로 악명 높은 특공대기지가 있던 곳이었다. 하츠요(ハツヨ)씨의 어머니인 토리하마 토메(鳥浜トメ)씨가, 당시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부근의 특공대원들이 외출할 때 이 식당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 중에는 미츠야마 후미히로(光山文博)라는 대원이 있었는데, 그도 자주 이곳에 들러서 식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편지 교환도 별로 없는 외톨이 같았다. 그래도 그는 언제나 명랑하고 토메(鳥浜トメ)씨는 물론, 누구에게나 거리낌 없이 마음 가볍게 사귀는 등,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아들이 없었던 토메 씨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극진한 배려를 하여 주었고, 토메 씨와는 모자(母子)와 같이 친한 사이가 됐다.

   그는 출격(出擊) 전날, 작별 인사를 하러 와서는 토메 씨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오늘이 최후의 날이니, 노래라도 부를까요, 고향의 노래를..." 하면서 모자를 앞으로 깊숙이 눌러 쓰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는데, 그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토메 씨는 그가 조선인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는 탁경현(卓庚鉉)이란 조선반도 출신으로 교토약전(京都藥專) 학도병이었다. 토메 씨가 결별을 아쉬워하며 위로하자, 그는 "만일 영혼(靈魂)이 존재한다면 나는 반드시 이곳에 들를 테니, 내일 밤 반딧불이 되어……"라는 말을 남기고, 고개를 숙이고 부대로 돌아갔다.

   다음 날(1945년 5월 11일) 그는 예정대로 출격했다. 그리고 오키나와의 바다 어딘가에 몸을 던졌을 것이다.

   그날 밤이었다. 초승달 밤이어서, 약간 흐려서 주변이 어스레하게 희미해 보였다. 손님이 좀 일찍 끊겨서, 토메 씨도 서둘러 일을 끝내고 창문을 닫고 있었다.

   그런데 토메 씨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 저것 반딧불이다! 미츠야마(光山) 씨가 찾아왔어!".

   거짓말처럼 반딧불이 날아와서 그가 와서 앉던 방에 들어갔다가 몇 차례 돌고 들락날락 하고 어두운 밤하늘로 사라졌다. 전설 같은 이 말은 곧 널리 퍼져 나가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부터 십여 년 전의 2001년 "반딧불"이란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되기도 했다).

   종전(終戰) 후에도 식당을 계속하던 토메 씨는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벽에 걸어 놓고 그가 살아서 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또 유족이라도 만날 것 아니겠냐 하고 기다리며 나날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토메 씨는 세상을 떠났다.

   여주인 하츠요 씨는, 지금은 어머니도 죽어 안 계시고, 당시의 일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옛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지만, 어머니가 그토록 몹시 아끼던 이 사진을 함부로 치울 수 없어서, 지금도 그대로 쓸쓸한 벽에 걸어 두고 있지만, 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다. 어쩌면 유족을 찾거나 아니면 그의 사진만이라도 고국에 전달되었으면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식당을 여관으로 개조하고, 따님과 함께 운영한다고 하는 안주인 하츠요 씨는 우리의 식사를 거들면서 광산(光山) 씨에 대한 절절한 심정을 이으며 말했다.

   하룻밤 묵고 여인숙에서 나가면서 복도의 벽에 걸린 낡은 사진 속에서, 여주인이 가리킨 한장의 사진이 유난히 쓸쓸하게 보였다. 그의 생애에 마지막 사진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가족들은 고사하고 동족의 발길까지 닿지 않는, 이 이국(異國)의 산속 작은 여관의 차가운 벽에 육십오 년째 외로이 걸려 있는 것이다.

   아직 어린 젊은 피가 끓는 청춘이, 남의 나라 전쟁의 희생양으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덧없는 생애를 마친 것이다.

   희생된 그들을 정국신사(靖國神社)에 봉안해 두는 것으로 다 된 것일까. 종전(終戰) 후 육십오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이렇게 함부로 벌여두는 것에 대하여, 나는 인간적으로 분노(憤怒)가 치밀었다.

   지금도 이국(異國)의 하늘을 헤매고 있는 그의 영혼을 따뜻한 조국의 품에 안기어 위로 받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출격 전날, 광산(光山) 그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하고, "아리랑"을 부르며 흘린 눈물은 무엇을 의미한 것일까.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당시의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 글은 지나간 (2010년) 12월 10일 j일보(日報) 독자 투고란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는 이 글을 접하고 너무나도 안타까운 생각에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원작자 최 길시 씨와 연락이 있어 확인한 결과, 탁경현(卓庚鉉)의 고향은 경상남도 사천시 서포면 외구리(慶尙南道泗川市西浦面外鳩里)로, 그의 가족은 종전(終戰)되기 전에 일본으로 이주해서 지금은 고향의 친척과도 연락이 끊긴 상태임. 이 기사를 접하고 탁경현의 사정을 딱하게 생각한 (사천(泗川)이 고향인) 한 여성 독지가가 그의 영혼이나마 위로하려고, 친척들과 연락한 결과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 개인적으로 절에다가 부탁하여 인도제(引渡祭)(遷度祭)를 지냈다는 것이다. 그녀는 매년 계속하여 이 제사를 지낼 거라고 한다. (綠風會 編集者 曺京植의 말)

-끝ー    


 寂しく掛けられている一枚の写真

         -異国の山郷の旅館の冷たい壁に六十五年間-


                   崔 吉時 (元中學校長)

私たち夫婦は去る秋ごろ(2010年)鹿児島へ旅行してきた。鹿児島の美山の朝鮮陶工の後裔である沈壽官家を訪ね、薩摩焼の陶窯地とその焼き物を見物するためであった。展示館や沈壽官家の訪問のスケジュールが予定より早く終えたので、この地に来たついでにその辺りでも廻って見ようかと思い、観光案内所に連絡してみたところ、知覧という不慣れな地を推薦してもらった。観光案内地図の一隅から知覧を確かめ、富屋という旅館に電話で予約した。

曲がりくねった山道をたどり、ようやく知覧に着いたのは夕闇が迫る頃であった。知覧は人足稀の山郷の小さな村であった。旅人の土地に踏み迷うかと思ったか、玄関の外まで出て辺りを見回しながら待っていた女主人が私たちを嬉しくまっていてくれた。

今日の客は私たち夫婦が唯一の客であるみすぼらしい小さな旅館であった。玄関に入ると、ほの暗い廊下の壁には、すっかり特攻隊とホタルの写真の額縁が、昔一人の朝鮮人と深い縁のあるところであることを言いながら、次のような話を聞かせてくれた。

知覧には、第二次大戦の際、「神風」という自殺攻撃として悪名高い特攻隊基地があったところであった。ハツヨさんの母親である鳥浜トメさんは、当時ここで食堂を営んでいた。付近の特攻隊の隊員達が外出の折、この食堂を利用したりしていた。その中には光山文博という隊員がいて、かれも度々寄っては食事をしたりしていたものだ。

ところら、彼には訪ねてくる人もいなかった。手紙の交換も別にない一人ぼっちのようだった。しかも、かれはいつも朗らかで、トメさんには勿論、誰にでも気兼ねなく気軽に付き合うなど、愛想のよい人であった。

息子がいなかったトメさんは、誰も訪ねてくる人のない彼をかわいそうにおもい、心遣いしていたところ、トメさんとは母子のような親しい間柄となった。

彼は出撃前の日、別れの挨拶に來てはトメさんと一緒に夕飯を食べた。食事を済ませて「今日が最期の日であるから歌でも歌いましょうか、故郷の歌を…」といいながら、帽子を前に引き深くかぶり、軽く震えるこえで歌うのである。その歌は、「アリラン」であった。

トメさんは彼が朝鮮人であることを初めて知った。彼は卓庚鉉という朝鮮半島出身で、京都薬専の学徒兵であった。トメさんが決別を惜しみながら慰めると、彼は「万が一霊魂が存在するならば私は必ずここへ立ち寄るから…、明日の晩ホタルになって……」という話を残して、うなだれて部隊に帰った。

翌日(1945年5月11日)、彼は予定のとおり出撃した。そして沖縄の沖のどこかに身を投げたであろう。

そのひの晩である。三日月の晩だったがちょっと早めにとだえたので、トメさんも仕舞を急ぎながら窓を閉じていた。

ところでトメさんが急に叫んだ。

「あれ!ホタルだ!光山さんがやってきたのよ!」。

うをのようにほたるが飛んできて彼が來て彼が座っていた部屋に入っては、何度か回って出たり入ったりしてから暗い夜空に消えてしまった。伝説のようなこの話はすぐ広く広がって、この世に知られた。(今から十余年ほど前の2001年、「ホタルの光」という映画が製作され、上映されたこともあった)。

終戦後も食堂を続けていたトメさんは、彼と一緒に撮った写真を壁に掛けておいて、もし彼が生きて帰るのではないか、また遺族にでも会えるのではないかと、待ちながら日々をくらしていた。ところがついにその夢を見られないままトメさんはこの世を去った。

女主人ハツヨさんは、今母も亡くなって、当時のことは人々の記憶からわすれられた昔話に過ぎないことだが、母親がそれほど虎の子にしていたこの写真をやたらに片付ける事もできないので、いまもそのまま物寂しく壁にかけておいているが、これらをみるたびに心が痛むといっている。どうかして遺族を探すとか、それとも彼の写真だけでも故国に渡されればと思っている。

今は食堂を旅館に改造して娘さんと運営しているという女主人のハツヨさんは、私たちの食事を手伝いながら光山さんに関する切ない心情を続いて言い足した。

一晩泊って旅館から出かけながら廊下の壁に掛けられている古い写真の中から、女主人が指さした一枚の写真がとりわけ寂しく見えた。彼の生涯に最後の写真であろうこの一枚の写真は、家族はさておき同族の足までは届かないこの異国の山奥の小さな旅館の冷たい壁で、六十五年間も寂しく掛けられてあるのだ。

まだ幼い若き血が沸く青春が、他国の戦争のいけにえにとして、花を咲かさないまま、はかない生涯を終えたのだ。

犠牲にされた彼等を靖国神社に奉安して置くことだけで済むものだろうか。終戦後六十五年が經って未だに、故国に返されないまま、こんなにむやみにほったらかして置くことに、私は人間的に怒りが憤りが込みあがってきた。

今も異国のそらをさ迷っている彼の霊魂を温かく祖国の懷に抱えて慰める方法はないだろうか。

出撃の前の日、光山が帽子で顔を隠して震える声で「…一理も行けないで足を痛める」と「アリラン」を歌いながらながした涙は何を意味するものだろうか。私は錯綜したこころで当時の彼の様子を想像して見る。

「この文は去る(2010年)12月10日、j日報の読者欄に載せた記事です。私はこの文に接し、あまりにも切ない思いがしてここに紹介します。原作者崔吉時さんと連絡が取れ、確かめたところ、卓庚鉉の故郷は慶尙南道泗川市西浦面外鳩里で、彼の家族は終戦前、日本に移住して、今は古里の親戚とも連絡が切れている状態であるとのこと。この記事に接して、卓庚鉉の事情を気の毒に思った泗川を故郷にしているある女性の篤志家が、彼の霊魂でも慰めようとして、親戚たちと連絡してみたところ、ぞっとしない反応だったので、個人的にお寺に頼み、引導祭(遷度祭)を行ったとのことです。彼女は毎年続いてこの法事を行うつもりだそうです。

               ー終わり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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