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갈렙회

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32年 (昭和7)

  • 김학도
  • 조회 : 1160
  • 2017.08.31 오후 06:17



1932年 (昭和7)

3月 1日, 日本은 満州國을 建國했다. 清의 最後의 皇帝 溥儀를 満州國 皇帝로 擁立하고 實権은 関東軍이 掌握했다. 日本은 [五族協和], 즉 満州族, 漢族, 蒙古族, 日本人, 朝鮮人이 [樂土満州]를 이룬다는 標語를 세우고, 満州에서는 이들 民族이 對等하고 平和롭게 살 것이라고 宣傳했다. 그러나 満州國은 日本의 傀儡政府이며, 저들이 세운 [五族協和] [樂土満州]는 外形뿐이었다. 日本이 傀儡 満州國을 建國하자 朝鮮에서는 満州 移民 熱風이 불었다. 1932年부터 1942年까지의 10年間에 約100萬 名의 朝鮮人이 満州로 移民했다.

1月8日, 日本의 首都 東京의 한 가운데 桜田 문밖에서 韓國人 愛國團 團員 李奉昌이 天皇 히로히도(裕仁)에게 手榴弾을 던졌으나 失敗했다. 李奉昌에 이어 4月 29日, 尹奉吉이 中國 上海 홍커우(虹口)公園에서 열린 天長節과 上海事変 戰勝記念式場에서 爆弾을 던져, 上海 駐屯 日本軍 總司令官 시라카와(白川義則) 海軍大将 上海 日本人 居留民團長 가와바타사다지(川端貞次)를 即死시키고, 第3 艦隊司令官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郎) 中将第9師團長 우에다겐키치(植田謙吉)中将 駐中 公使 시게미츠 마모루(重光 葵) (注) 등 10餘名 명에게 重傷을 입혔다.

 [注] 重光 葵:政治家 外交官이었다. 中國 行使로서 노력하고 있던 이 해, 尹奉吉 義士의 上海 爆弾事件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1943年(昭和18) 東条内閣의 外務大臣이 되고, 小磯内閣 때에도 留任되었다.

太平洋戰争 敗戰으로 成立한 히가시 쿠니(東久 邇)内閣에서도 外務大臣이 되고, 政府 全権으로 降伏文書에 調印했지만, 잠시 後 戰犯者로서 逮捕되어, 極東 軍事 裁判所에서 A級 戰犯으로 禁固 7年刑을 받아 服役中, 1950年에 仮釈放되었다.

그 後 改進黨 總裁, 日本 民主黨 副總裁 등을 거쳤고,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 内閣의 副總理 兼 外務大臣으로서 소련과의 國交 回復에 努力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조회
  • 1
  •  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32年 (昭和7)
  • 2017-08-31
  • 김학도
  • 1161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