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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17 年 (大正6)

  • 김학도
  • 조회 : 1079
  • 2017.08.30 오전 05:07

1917年 (大正 6)

   6월 8일, 왕위를 물러났던 純宗皇帝가 일본을 방문했다. 純宗의 渡日에 즈음하여 國內에서는 "우리의 임금이 일본에 사로잡혀서 갔다"는 流言蜚語가 오갔다. 일본 방문 중 純宗은 大正天皇에게 허리를 깊게 굽히고 敬禮했다. 臣下가 主君을 拜謁하는 儀式의 [天機奉伺]를 擧行했다. 이는 우리의 역사상 丙子胡亂(1636년~37년)(注)때, 仁祖(朝鮮 第16代 王)가 漢江三田渡廣津에서 淸의 太祖를 向하여 三拜九叩頭礼(三度礼 九度額)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가장 恥辱的인 事件이었다.

   作家 春園 李光洙는 이 해 正月 1日부터 6월 14일까지 總 126회에 걸친 장편소설 [無常]을 [每日申報]에 連載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청년의 이상과 고뇌를 그리며, 조선 청년의 진로에 하나의 암시를 주려고 썼다]고 했다. 이 소설이 연재되자 [無常]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이것이 베스트 셀러가 된 덕분에 신문 판매부수가 1만부나 增加했다고 한다.

   釜山에서 滿洲의 安東(現 丹東), 奉天까지 列車가 運行되고 또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연락선이 정기적으로 運航되는 등 韓 · 中 · 日 間의 거리가 한층 좁혀졌다. 서울의 漢江에 步道橋가 完工되어 걸어서 한강을 건널 수 있는 반면, 조상 대대로 가업을 이어 온 나룻배의 사공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投身自殺을 하는 장소로 浮上했다. 한편 國內는 물론 海外로 移住한 僑胞들마저 뜨거운 敎育熱로 학교를 건설하여 열심히 民族敎育을 實施했다.


[注] 丙子胡亂 : 1636年 (仁祖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淸나라가 朝鮮에 대한 第2次 侵入으로 일어난 戰爭이다. 1637년, 이 싸움에 패한 朝鮮 第16代 王 仁祖 는 漢江三田渡廣津에서 平民의 옷으로 갈아입고 淸나라 太宗 앞에 무릎을 꿇고 降伏의 표로 臣下의 禮로, [三拜九叩頭礼]를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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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17 年 (大正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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