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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10年 (明治 43)

  • 김학도
  • 조회 : 1038
  • 2017.08.23 오전 07:12



  

朝鮮総督府의 植民地 統治實態(明治43)

1910(明治43)年

이 해 8月 22日、京城(現 서울)(注1)에서는 宮殿이 日本의 軍隊와 警察에 포위된 가운데, 大韓帝國 内閣総理大臣 李完用과 朝鮮統監 寺内正毅가 [韓日併合] 條約을 締結했다. 日本은 韓國人이 이 事實을 알면 憤怒가 爆發할 것을 念慮하여 隱匿해 왔지만, 8월 29일 마침내 이를 奇襲的으로 發表했다. 이날 慶福宮勤政殿(注2)에 日章旗가 내결렸다. 우리 5천년의 歴史上、異民族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겼던 恥辱的인 날이다. 이 해 10月, 統監 寺内正毅가 初代 朝鮮総督으로 就任했다.

이에 따라 1392년 建國한 朝鮮은 519年 만에 그 幕을 내렸다. 이날부터 朝鮮의 民草는 나라를 빼앗기고 [亡國民]이 되고, 나라 없는 슬픔과 함께 酷毒하고 惡辣한 日本帝國의 强占期를 맞이했다. 이에 反하여 日本 全國 坊坊曲曲에서는 [韓日(日韓)倂合]을 祝賀하는 提燈行列이 三日三夜 繼續되었다고 알려졌다.

[韓日併合條約]의 前文에는 [韓國 皇帝陛下 및 日本國 皇帝陛下는 兩國間의 特殊하고 親密한 關係를 回顧하고 相互 幸福을 增進하는 東洋의 平和를 永久히 確保하고자 하는 이 目的을 達成하기 위해서는 韓國을 日本帝國에 倂合하는 수밖에 없다고 確信하고, 여기에 兩國間에 併合條約을 締結한다]고 하며, 그 名分을 엄청 크게 밝혔다.

하지만 이 條約이 締結되는 瞬間부터, 韓日 兩國 間의 相互幸福과 東洋의 平和는 永遠히 사라졌다. 韓日 倂合條約 第一條에는, [韓國 皇帝陛下는 韓國 全部에 關한 一切의 統治權을 完全하고 永遠히 日本 皇帝陛下에게 讓與한다]라고 明記되어 있어, 大韓帝國 三千里疆土는 日本帝國의 國土가 되어, 2천만 朝鮮民族은 나라를 빼앗긴 國民으로 轉落됐다.

日本政府는 即刻 大韓帝國을 象徴하는 文字인 大韓·皇國·皇城 등을 모조리 除去시켜 버렸다. [大韓]이라는 題目을 가진 모든 書籍은 押收 措置를 당했고,『大韓每日申報』는『每日申報』로 제목을 바꾸어 總督府 機關紙로 했다. 또 그동안 사용하던 中·高等學生用 敎科書의 出版을 禁止했다. 이 時期 하와이로 건너간 韓國人은 약 5천 명을 넘지만. 後日 그들은 美國에서 韓國人社會의 主役이 되어 祖國獨立運動에 크게 貢獻했다.

[注1] 京城 : [現 서울] 韓國語로 서울은 한 나라의 中央政府가 있는 곳, 즉 首都를 意味한다. 또 京都、京洛、京師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의 首都의 呼稱이다.

[李氏]朝鮮은 나라를 세우고 首都를 [漢陽]이라고 称했지만, 韓日併合後 事実上 首都은 없어지고, 日本帝国은 旧漢陽(漢城府)을 하나의 地名으로서의 [京城]으로 改称하였다. 1945(昭和20)年, 光復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京城]이라는 呼称을 廃하고 從來처럼 首都를 서울이라고 称하게 되었다.

[注2] 慶福宮勤政殿 :1395年, 朝鮮王朝의 正宮 景福宮의 中心的 宮闕로 지어졌다. 朝鮮 歷代 王의 卽位式과 大禮 등이 擧行된 곳으로, 바로 朝鮮王室의 象徵建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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