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人의 宗教意識
日本人의 宗教意識
遠藤周作
일본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또한 여러 각도에서 고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 여러 가지 관점 가운데에서 일본인의 종교 의식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싶습니다. 일본인의 종교 의식을 특히 유럽의 기독교와 비교 검토 속에서 바라보면서 일본인들이 이 기독교를 어느 시기에 어떻게 굴절(屈折)하여 신앙 했느냐 하는 것을 본다면, 그 굴절도가 일본인의 마음, 일본인의 종교의식(宗敎意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지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철이 들면서 어떤 의문에 늘 사로잡히곤 하였습니다. 그것은 일신론(一神論), 즉 신이 하나밖에 없는 기독교가 산과 숲과 기타 신들을 관용(寬容)하여 믿는, 즉 다신적(多神的)이고 범신적(汎神的)인 일본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의문이 늘 염두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문제를 항상 염두(念頭)에 두고 기독교의 일본인의 수용법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아시다 시피 기독교가 일본에 들어온 것은, 프란시스코·자비에르의 시대입니다. 프란시스코·자비에르가 일본에 온 것은, 일본이 전국시대(戰國時代), 지금으로부터 4세기 전쯤의 일이라서, 그로부터 도쿠가와시대(徳川時代)의 초기에 일본이 기독교를 전적 금지(禁止)할 때까지의 사이에, 몇 가지 단계를 거쳤습니다. 이 몇 가지 단계를 대충 나누면 3 시기로 나누어집니다.
제1기, 이는 프란시스코·자비에르로부터 정확히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시대까지의 즈음으로 생각합니다. 이 시기의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폭넓게 말하면, 현세이익(現世利益)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어서, 현재에도 병이 치료된다거나 혹은 돈이 벌어진다거나, 현세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 부처님이 해 주길 바라는 뜻으로서의 종교심(宗敎心)이라는 것이 일본인 속에 매우 강했던 것입니다. 진짜 종교란 그런 현세이익이라는 것을 빼고, 현세에 이익이 없다는 데서 비롯되지만, 일본인의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현세이익이라는 것이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 약사여래(藥師如來)처럼 병을 낫게 해주는 부처님을 떠받드는 것도 그 하나의 형태이며, 현대의 신흥종교(新興宗敎)에서 꼭 암(癌)이 나았다라고 하는 것을 매력(魅力)으로 신도(信徒)를 끌어 모으는 것도 현세이익입니다.
제1기 기독교도 병을 낫게 해주거나 그것을 환영하는 여러 다이묘(大名)에 남만무역(南蠻貿易)의 이익을 가져오거나 혹은 무기탄약(武器彈藥)을 공급해 주는 것과 함께 들어온 종교로서 이를 보호하고 믿으면 우리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관점이 당시 이를 환영한 여러 다이묘((大名) 중에 상당히 강성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 기독교는 위에서 아래로 간다는 관점에서 다이묘가 믿으면 이걸 또 가신(家臣)이 믿고 가신들이 자신의 영지(領地)의 백성들에게 이것을 믿도록 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위에서 아래로의 봉건적(封建的)인 구조(構造) 속에서 확대(擴大)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보다는, 기독교가 당시 가져온 현세이익이라는 것이 확대되어 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기에 들어가면, 2대째 제1기의 어린이들이 이를 신앙(信仰)하게 되어, 예전보다는 많이 기독교에 대한 신앙이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잘 알아보면 매우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외국의 일본기독교사(日本基督敎史), 즉 외국인(外國人)이 쓴 일본의 기독교사 등을 보면, 기독교가 개인의 자각을 촉구한 것처럼 씌어 있지만, 나는 기필코 이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요즘의 신앙에는 역시 일본의 큰 농촌의 구조(構造)라는 것이 작용하고 있어서, 마을 단위, 집락단위(集落單位)로 믿거나 혹은 떠나거나 하는 경향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는 것은 특히 그 지도자 즉 촌장(村長)이 믿는다면 마을 사람들도 이를 믿고, 마을의 지도자인 촌장이 이것을 떠나면, 마을 사람들도 떠나는 경향(傾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나에게 엿보이는 것은 종교와 일본인의, 마을과의 관계라는 것이 꽤 짙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제2기 후반(後半)부터,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家康、徳川秀忠)의 무렵부터, 차츰 기독교에 대한 탄압(彈壓), 박해(迫害)가 시작되지만 이럴 때, 개인의 신념에 의해서 관철(貫徹)한 사람이 물론 있습니다. 물론 있지만 대체로는 리-더가 지금까지 믿던 기독교라는 것을 믿는 것을 포기하면, 마을 사람들도 이를 그만 둔 경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때는 매우 왕성했던 기독교의 신앙이 눈 깜짝할 사이에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은, 개인 단위가 아닌 마을 단위, 마을 단위였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을, 본인 생각으로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때, 매우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일본인의 종교에는 선조의식(先祖意識), 조상숭배(祖上崇拜), 조상예배의 감정이 섞여 있어서. 프란시스코·자비에르가 일본에 왔을 때 가장 난관(難關)이었던 것입니다. 무엇이냐 하면, 일본인이 생각하기를, 만일 자신이 기독교를 믿으면 죽은 후에 자기 조상과 같은 세계에 못 간다는 것, 아니냐는 것을 불안(不安) 해 하고 있다는 것이, 포교(布敎)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만, 이 마을 의식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제3기라는 것은 이제 박해가 절정(絶頂)에 이르러서, 선교사들의 모습은 이 일본에서 사라지고, 교회도 없어지고, 일본인의 극히 일부에서 서양 정신으로 단련된 개신교가 아주 가느다랗게나마 이어받은 시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기에 대하여 가장 흥미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도 없어지고 선교사도 없어지게 되면, 기독교라는 것을 일본인 스스로가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 말을 본문에서는 ‘일본인의 이빨로 씹어 깨뜨리고 나가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옳고 그름을 바로 잡아갈 수 없기에, 일본인의 종교의식(宗敎意識) 중에서 자유롭게 변형(變形)되어 간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느냐에 대하여 나의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별히 말합니다. [隠れキリシタン] 「숨은 기독교도」(1. 江戸幕府의 기독교 금지 하에 몰래 신앙을 지킨 기독교도. 2. 明治 이후 조상 전래의 신앙을 지킨 잠복(潛伏) キリシタン)이라고 하는 것은, 한참 동안 도쿠가와 막부의 기독교 금지령에서 기독교를 믿었던 것처럼 전해지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었던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일본식으로 변형(變形)된 것을 그들의 기독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민족적(民族的)으로 토착화(土着化) 한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것이 섞여 있었습니다. 불교(佛敎), 신도(神道), 그런 것이 마치 잡탕(고쯔타자)처럼 혼연(混然)하여 가해지고 있지만, 나는 한때, 그럼 도대체 이 사람들 「숨은 그리스도교」라는 것이 기독교 신자가 보통 경배하는 하나님을, God이라는 것을 정말로 경배하고 있었던 것일까, 혹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알고 믿었던 것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의 조사에 의해서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사람들은 오난도슈라고 해서 관리들의 눈을 피하여 열심히 손을 모아서 빌고 있던 여러 가지 것 중 가장 신앙의 대상으로 했던 것은 사실 God도 아니고 그리스도도 아니고 성모 마리아였다. 성모 마리아, 우리가 보통 말하는 성모 마리아라는 것보다는 그들의 「母親」 아주 농도(濃度) 짙은 "어머니"의 이미지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마리아 관음상(觀音像)이라는 것은 복건성(福建省)에서 온 육아(育兒) 관음보살을 마리아로 만들어 놓고 빌고 있지만, 또 그들은 그 마리아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것에 손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빌고 있던 그 그림의 마리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종교화(宗敎畵)에서 보는 성모 마리아라기보다는 오히려 농부의 작업복(野良着)을 입은 일본인의 모친(母親)(어머니)라는 느낌입니다. 여기에 저의 흥미(興味)가 집중된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란 God나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종교에 있어서 물론 성모 마리아란 천주교의 경우 매우 무게를 이루고 있지만 제1위는 아닙니다. 그 제1위에 오르지 못한 성모 마리아라는 것이 이 t덧" 틀림없는 그리스도교"신앙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요컨대 기독교라는 것이 변형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고 변형했다고 말하면 기독교란 어머니의 종교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종교의 매우 짙게 형태로 유럽에서는 자라고 있었습니다. 즉 아버지라는면 우리는 무서운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가장 지금 아버지는 좀 다릅니다겠지만 보통 아버지란 자식들을 엄하게 교육하고 아이를 야단치는 처벌하거나 하는 것이었습니다.엄마라는 것은 아이를 달래 주고 아이와 함께 시달리고 주거나 식의 이미지가 일본인들 사이에 강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것은, God이라든가 그리스도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종교인데, 물론 성모 마리아라는 것은 가톨릭의 경우 매우 중요시되어 있지만, 제1위는 아닙니다. 그 제1위가 아닌 성모 마리아라는 것이 언제인가「숨은 기독교도」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 요컨대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 변형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 해서 변형되었는가 하는 것을 말하면, 기독교라는 것은 모친(母親)의 종교라기보다는 유럽에서는 부친(父親)의 종교라는 매우 농도 짙은 색깔의 형태로 자라왔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친(父親)이라고 말하면 우리에게는 두려운 존재로 생각되지만, 지금의 부친은 좀 다르지만, 보통 부친이라고 하면 아이를 엄하게 교육하며, 아이를 꾸짖거나 벌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모친이라고 하면 아이를 위로해 주고, 아이와 같이 고민도 함께 해 주는 그러한 이미지가 일본인 사이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보통의 상식적 이미지에서 말하면 기독교란, 또는 God라는 것은 일면(一面) 위로하는 면도 있지만, 역시 나무라거나 벌하거나 단죄하기도 하다는 질서로서의 면이 아주 진한 종교입니다. 이 아버지의 종교인 것을 「숨은 기독교도」, 다시 말하면, 즉 일본인들은 어느새 아버지의 종교를 뽑아 버리고, 성모 마리아, 아니 농부의 작업복을 입은 자신의 모친(어머니)에게 합장하는 종교, 즉 어머니의 종교라는 것으로 바꿔버렸다고 하는 그 점에 대하여 나는 비상한 재미를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일본인의 종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불교의 경우도 중국과 조선을 거쳐서 일본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일본인의 상황에 맞추어 헤이안시대(平安時代)부터 무로마치시대( 室町時代)가 되어가면서 따라 점점 어머니의 종교로 바뀌었습니다. 아미타(阿弥陀)님을 경배하는 일본인의 기분, 이는 아이가 어머니에게 무엇인가 요구하는 기분의 투영(投影)이 매우 잘 나타납니다. 아미타님이라고 하는 데는 매우 짙게 어머니의 이미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토진종(淨土眞宗)의 안의, 선인(善人)도 구하고 하물며 악인(惡人)도, 라고 하는 말도 해석 방법에 따라서는 ‘못된 아이일수록 더 귀엽다’고 하여 일본인 어머니 심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인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어머니의 종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며, 불교도 일본화(日本化) 하면 어머니의 종교가 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유럽에서 아버지의 종교로 자란 기독교가 멀리 일본에 왔지만, 선교사도 교회도 없어지고 일본인만의 손에 남몰래 넘겨지게 되면 그 골자 부분이 어느새 녹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인식의 어머니의 종교로 슬쩍 변해갔다고 하는 것이, 일본인의 종교의식(宗敎意識)의 큰 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어머니의 종교라는 것은 기독교 속에도 있습니다. 특히 신약 성경 안에는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또 어머니의 의식이라는 것은 일본인 특유의 것은 아닙니다. 동남아 등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 모친의 의식이 한층 더 강하다는 것은, 내가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예를 들어 언어학자(言語學者)인 카와이 하야오(河合隼雄) 선생님 등이 항상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와이 하야오(河合隼雄) 선생님이 심리요법가(心理療法家)로서 일본인의 의식(意識) 밑바닥의 것을 살펴보면 꼭 어머니가 나온다는 것을 항상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경로에서 그리스도교가 일본인 중에 수용되고, 그것이 어떤 굴절의 방법을 통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역시 모친(母親)이라는 것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日本人の宗教意識
日本人については、いろいろな観点から、また、いろいろな角度から考察できると思います。私の場合は、そのいろいろな観点の中から、日本人の宗教意識というものを取り上げてみたいと思います。日本人の宗教意識を特にヨーロッパのキリスト教との比較検討の中で眺めてみて、日本人たちがこのキリスト教をある時期どのようにして信仰したかということを考えてみるならば、その屈折のいが、日本人の心、日本人の宗教意識を表わ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私は考えるわけです。私自身子供の時、キリスト教の家庭に育ちましたので、がつきましてからある疑問にいつもとらわれました。それは、一神論、つまり神さまが一つしかない、と言うキリスト教が、山や森や、またその他の神々を、にじる、つまり多神的で、汎神的な日本人に、どうして受け入れられるか、という疑問がいつもから去らなかった。そういう問題をいつも頭に置いて、キリスト教の、日本人における受け入れの仕方ということを考えていました。
ご存知のようにキリスト教が日本に入りましたのは、フランシスコ·ザビエルの時代でございます。フランシスコ·ザビエルが日本にやってきましたのは、日本がの、今から4世紀前の頃のことでございまして、それから、徳川時代の初期に、日本がキリスト教をまったく禁じてしまうまでの間に、いくつかの段階を経てまいりました。このいくつかの段階を大ざっぱに分けますと3っに分かれます。第1期、これはフランシスコ·ザビエルからちょうど、織田信長、豊臣秀吉時代にかけての頃だろうと思います。この時期のキリスト教というのは、大雑把にいってしまうと、現世利益という点において非常に重要なを占めておりまして、現在でも病気が治まるとかあるいはお金が儲かるとか、現世の幸福が得られると言うことを神さま、仏さまがしてくださることを願う意味での宗教心というのが日本人のなかににうございます。 本当の宗教というのは、そういう現世利益ということをぬきにして、現世に利益がないというところから始まるのですけれども、日本人の場合には、あくまでも現世利益ということが主体になっております。仏教において、のように病気を治してくれる仏さまがあがめられるのもその一つの形態でありますし、現代のの中で必ずガンがなおったというようなことをとして信徒を引きつけているのも現世利益でありましょう。
第1期のキリスト教も、病気を治してくれるとか、あるいはそれをするにの利益をもたらしたり、あるいはを供給してくれるものに伴って入ってきた宗教で、これを保護し、信ずれば自分たちも利益を得られるという観点が当時の、これを歓迎した諸大名の中にかなり強くあったことはめません。そして、この頃のキリスト教とは、上から下へ行く観点でありまして、大名が信ずればこれをまたが信じ、家臣は自分の領地におけるたちにこれを信仰することを許すという、上から下への封建的な仕組みの中で拡がってゆく形をとっておりました。ですからこれは、キリスト教を信じるというよりは、キリスト教が当時持ってきた現世利益というものが拡がって行ったのだろうと思います。
第2期に入りますと、2代目、第1期の子供たちがこれを信仰するようになって、前よりはかなりキリスト教についての信仰が強くなってきました。しかしこれも、よく調べてみますと非常に面白いことがあります。
外国の日本キリスト教史、外国人が書いた日本のキリスト教史などをみますと、キリスト教が個人の自覚をうながしたように書かれておりますが、私は必ずしもこの意見には賛成しておりません。と申しますのは、この頃の信仰には、やはり日本の、大きな農村のというものが作用しておりまして、村単位、集落単位で信じたり、あるいは離れたりする傾向がうかがわれるからであります。
村の人たちがキリスト教を信じるのは、特にそのリーダーが、が信じるならば、村人もこれを信じ、村のリーダーが、村長がこれから離れるならば、村の人たちもこれから離れてゆくという傾向が見られます。そういうところにも、宗教と日本人の、集落との関係というのが、かなりく私にはうかがわれるような感じがいたします。
ですから、この第2期のから、つまり豊臣秀吉のあと徳川家康、徳川秀忠の頃から、そろそろキリスト教に対する、迫害がはじまりますが、こういう時、個人の信念によって貫きとおした人はもちろんおります。もちろんおりますけれども、おおむねは、リーダーが今まで信じていたキリスト教というものを信じるのをやめるならば、村人たちもこれをやめてしまうという傾向が非常に強く見られました。一時は非常にさかんだったキリスト教の信仰があっというまにガタガタッと。くずれてしまったのは、個人単位ではなく集落単位、村単位であったことを物語っているような気が私にはするわけです。そして、この際、非常に大きくひびくのは、日本人の宗教には祖先意識、、祖先礼拝の感情が混じっておりまして、かのフランシスコ·ザビエルが日本へ来た時、一番のというのが日本人が、祖先と同じ世界に、死んだ後行けないということ、自分がキリスト教を信じれば、祖先と同じ世界に行けないのではないかということを不安がっているということがの障害に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言っていますけれども、この集落意識とキリスト教の関係につきましても同じことがいえるような気がいたします。
第3期というのは、もう迫害がに達しまして、宣教師たちはこの日本から姿を消し、教会もなくなって、日本人のごく一部の中で、西洋精神できたえられたキリスト教が、ほそぼそと受けつがれた時期であります。そして私はこの時期に一番興味を抱いているわけです。と申しますのは、教会もなく、宣教師もなくなりますと、キリスト教というものを日本人の歯でかみくだい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そうするとするものがありませんので、非常に、日本人の宗教意識の中で自由に変形されていった。これがどうなっていったのかということに私の関心は集中したわけです。世に申します「かくれキリシタン」といいますのは、永い間、徳川幕府のキリスト教禁止令の中でキリスト教を信じていたごとく伝えられていますが、実はそうではありません。
彼等が信じていたのはキリスト教ではなく、日本的に変形された、彼らの、キリスト教と思っている。民族的な、した宗教だということができます。そこにはいろんなものが混じっておりました。仏教、神道、そういうものが、まるでゴッタ煮のようにとして、加えられていますが、私は一時彼らが、それでは一体、この人たち「かくれキリシタン」というものが、キリスト教がふつう拝む神様を、Godというものを、本当に拝んでいたのだろうか、あるいはキリストのことをいろいろ知って信じていたのだろうかと言うことを考えていました。ところが学者たちの調査によってもはっきりわかりますように、この人たちは、オナンドシューといいまして、役人たちの目をかくれて、一生懸命手を合わせて拝んでいたいろんなものの中で、一番信仰の対象にしていたのは、実は Godでもなく、キリストでもなく、マリアだった。聖母マリア、われわれがいうような聖母マリアというものよりは、彼らのおっっかさん「母親」のイメージの非常に濃いものでした。俗にいうマリアというのは、から来るて観音をマリアに見立てて拝んでおりますが、また彼らは、そのマリアの絵を書いてそれに手を合わせておりました。彼らが拝んでいた、その絵のマリアというのは、われわれが宗教画で見る聖母マリアというよりはむしろをた日本人のおっかさん(母親)という感じです。ここに私の興味は集中したわけです。
と申しますのは、キリスト教というのは、 Godとかキリストを信仰の対象にする宗教でありまして、もちろん聖母マリアというのはカトリックの場合非常に重みをなしておりますが、第1位ではありません。その第1位でない聖母マリアというものが、いtのまにか「かくれキリシタン」の信仰の対象になったということは、要するにキリスト教というものが、変形した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どういうふうにして変形したかといいますと、キリスト教というのは、母親の宗教というよりは、父親の宗教の非常に色濃い形でヨーロッパでは育ってきておりました。つまり父親といい、ますとわれわれはこわいものとして考えますが、もっとも今の父親はちょっと違いますでしょうが、ふつう父親と言うのは子供を厳しく教育し、子供を叱ったりし、罰したりするものでした。母親というのは、子供をなぐさめてくれたり、子供と一緒に苦しんでくれたり、というふうなイメージが日本人の間に強いわけであります。そういう、普通のイメージからいいますと、キリスト教というのは、Godというのは、一面なぐさめる面もありますが、やっぱり、叱ったり、罰したり、いたりする、という秩序としての面が非常に濃い宗教であります。この父親のその宗教なものを「かくりキリシタン」、つまり日本人たちは、いつのまにか抜いてしまって、聖母マリア、いやを着た自分のおっかさん(母親)に手を合わせる宗教、つまり母の宗教というものにすりかえてしまったというところに、非常な面白さを私は見つけることができたのです。
これは、他の日本人の宗教の場合にもいえることでありまして、たとえば、仏教の場合も、中国や朝鮮をへて日本に入ってきました。それが、日本人の歯でかみくだかれ、平安時代から、室町時代になってくるにしたがって、だんだん母の宗教になってきました。さまを拝む日本人の気持、これは子供が母親に求める気持のが非常によく現われています。阿弥陀さまというのには、非常に色濃く母のイメージが落ちております。の中の、も救われ、いわんやをや、という言葉も解釈の仕方によっては、いほどとう、日本人の母親心理をに表わしているのであって、これはある意味では、母の宗教であるということができましようし、仏教も日本化すれば、母親の宗教になるといってもさしつかえないだろうと思われます。ヨーロッパにおいて父親の宗教として育ったキリスト教が、遠く日本にまいりまして、そして、宣教師も、教会もなくなり、日本人だけの手に、ひそかに伝えられるようになりますと、そのとなる部分が、いつの間にかとけてしまいました。そして日本人的は母親の宗教にすりかわっていったということが、日本人の宗教意識の大きな面を表わ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私は思います。
もちろん、母親の宗教というのは、キリスト教の中にもあります。特に新約聖書の中にはそういう傾向はうかがわれますし、また母親の意識というものは、日本人独特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東南アジアなどでもうかがわれるわけであります。しかし日本の中では、この母親の意識がことさらに強い、ということは別に私が言わなくても、たとえば学者の先生などが常に語っておられることであります。
河合隼雄先生が心理療法家として日本人の意識下のものをさぐると必ず母親が出てくるということを常々おっしゃっていらっしゃいます。しかしわたしは別のルートからキリスト教が、日本人の中でされて、それがどういう屈折の仕方をするかということを見ますと、やはり、母親というものにぶつからざるを得なかったわけであり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