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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4월 12일

  • 장재영
  • 조회 : 1263
  • 2014.04.12 오후 07:36

멀리 떨어져...(26:57-58)

 

서론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종려주일이다. 종려주일이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준비하려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날을 말한다. 예루살렘에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하셨는데 입성을 하실 때에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들어오신다는 소리를 듣고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에 종려나무 가지(대추야자나무)를 그 길에 깔고 예수님을 맞이하였다. 그렇게 예수님이 성대한 환호를 받으며 입성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메시야사상이라는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메시야 사상이란 이스라엘에 다윗과 같은 힘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 그들을 다른 나라들로부터 지켜내고 다윗이 이룩했던 그 땅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는 사상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메시야 사상을 가지고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 기대하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환영하였던 것이다.

 

본론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을 예수님께서는 아셨다. 그러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의 영토회복이 아닌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임을 예수님을 통하여 알려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오신 이유는 첫 사람인 아담이 저지를 죄악을 통해 죽을 수 밖에 없던 우리를 두 번째 아담되시는 예수님께서 생명으로 옮기신다는 것이다. 그러한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그저 정치적인 메시야만을 바라보다가 그들의 바람대로 되지 않음에 실망하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하며 십자가에 못박으라 고함치는 것이다. 그 중심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권력의 중심부에 머물러 있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그들에 대한 심판 메시지와 그들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스스로 열심인척 하며 믿음이 있는척 하며 살아왔지만 그들이 예수님께 들은 것은 심판의 메시지였으며 그들의 헛된 신앙을 꼬집어 이야기 하심으로 그들의 듣기에는 좋지 않았고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이야기 함으로 위기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한 그들은 자신의 자리와 자신들의 잘못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비난하고 있는 예수님을 죽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아들이기 위해 가룟유다를 은 삼십에 포섭하고 예수님을 팔아 넘기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고 선지자들의 예언이었다. 아무리 귀가 있어도 어두워져 그들이 듣지 못할 것이라는 선지지들의 예언처럼 그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자리만을 지키기 위해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잡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전까지 가혹하도록 채찍으로 때리고 고난을 준다. 그러한 예수님을 제자들은 어떻게 따라가고 있는가?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에 그들과 함께 있던 제자들을 위하여 스스로 잡혀가시고 제자들은 풀어주도록 하셨다. 그러한 제자들을 보면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라간 것이 아니라 멀리서 따라감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이 스스로 잡혀가셨는데 제자들은 자신은 잡히지 않기 위하여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입성에 대해서와 잡히시던 날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지금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하시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다. 그 따르는 것에는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말씀하시던 것들의 삶을 이야기 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만 생각하고 오해했던 유대인들처럼 우리또한 예수님을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는 예수님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원망하며 떠나가는 것이 우리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 생각대로 모든 것을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읽다보면 내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분명 내가 원하는 것과는 반대대로 하시길 원하시는데 우리는 내가 원하는대로 하다가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으면 왜 응답하시지 않냐고 따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많은 것을 예비하시고 하나님께로 오는 이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찾아가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내 조건에 맞추어 받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이기심이고 우리의 오만함 인 것이다. 그러한 것은 우리가 온전히 고쳐나가지 않으면 끝까지 받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을 바로 앞에서 보고 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하지만 예수님이 잡히시자 모든 제자들이 한꺼번에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수제자였던 베드로조차도 예수님 곁에서 따라갔던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자신도 잡힐까 두려워 얼굴조차 가리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른이들에게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 조차도 숨기고 따라가고 있다. 당당하게 예수님은 죄 없다 말하지 못하고 어떻게 되실까 노심초사 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도 틀리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학교에서 가정에서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는가? 아니면 멀리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가? 나와 거리를 두고 세상이 예수님을 비판한다고 내가 그분을 함께 욕하고 있지나 않나? 내게 위험이 닥칠까봐 예수님을 모른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다시금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까지도 잡히실까봐 스스로 잡히시고 자신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지키셨지만 그러한 제자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기도하고 자신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결론

예수님은 이 땅에 메시야로 오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메시야와 예수님이 너무나 동떨어져 있음을 알고 실망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친다. 자신의 생각과 너무나 다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거부하는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한 모습에서 우리가 벗어나야 한다. 또한 제자들이 멀리서서 예수님을 따라간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과 세상사이에서 예수님을 거리를 두고 살아가지 않아야 한다. 세상과 예수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우리는 미지근한 신앙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한 계시록 315절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셨듯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하셨다. 우리의 신앙이 차갑지 않고 뜨겁게 불타오르는 신앙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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