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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4월 20일 말씀

  • 장재영
  • 조회 : 1264
  • 2014.04.19 오후 08:10

평안하냐!!!(마태복음281-10)

 

서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금요일날 못 박히셨다. 그리고 아리마대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에 해는 빛을 잃었고 땅이 진동하였고 바위가 터졌고 무덤들이 열렸으며 자던 성도들이 일어나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 기록한다.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난 사건은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사건이지만 그것은 믿음의 영역에 속하고 이 말씀의 의미는 이미 죽은 자의 육체적 부활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의 언급이 없기에 잘 알 수 없지만 마태는 이 예언들이 성취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그 사건은 예수님이 죽으신 그 시각 성소와 지성소를 분리시켰던 휘장이 아래에서부터가 아닌 위쪽부터 찢어졌다. 성소의 휘장은 사랑의 힘으로 찢기에는 버거운 천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래에서부터 찢어지지 않고 위에서 찢어졌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힘으로 찢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막아놓고 있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사라 졌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앞으로 갈 때에 제사장을 거치지 않아도 됨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본론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완성하셨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평안하냐?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가 지금 평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이야기 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또한 평안을 묻고 계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그 평안을 이야기 하지 못한다. 그것이 왜 일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평안해야 하는데 내안에 그리고 내 상황이 나를 평안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스스로가 나를 올아 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왜 우리 스스로는 평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그것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나를 씻어내셨다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걱정들과 나의 해야할 일들이 나를 무겁게 눌러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훈련되지 못하면 닥쳐온 일을 잘 대처할 수 없다. 무슨 일이든지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수많은 반복훈련으로 인해 숙달되고 내 몸에 익혀져야 하는데 훈련되지 못하기에 닥쳐오는 일들에 대해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아직 많은 삶의 경험을 하지 못한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은 더욱 대처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몸은 컸어도 나이를 먹고 경험을 해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어른들의 말이 사실인 것이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때에 경험을 한다고 무작정 뛰어들 수도 없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책을 읽고 간접경험을 통해 그것을 깨닫고 알아야 하며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으로 양육되고 훈련되어져야 우리가 평안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삶속에서 예수를 의지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의지되지 못하고 경험 하지 못한다. 훈련이 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와 말씀으로 나를 훈련시켜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앞의 어려움이 나를 짖누르고 더 크게 다가 오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경험하고 익혀야 한다. 그렇게 말씀이 우리 안에 경험 되어질 때에 우리에게 진정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의지가 생겨나고 평안이 경험 되어질 것이다. 부활 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자신을 찾아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마리아에게 평안을 묻고 계신다. 자신에게 다가와 평안을 묻고 계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 안에는 무서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넘쳐났다. 그 안에서 평안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다. 그 후에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갈릴리로 돌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며 기뻐하였다. 처음에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닦기 위해 찾아간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자를 만나 긴가민가하며 기쁨 반 두려움 반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길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남으로 그 안에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 슬픔이 아닌 평안함이 찾아왔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이들과 만나지 못한 이들과의 차이인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어떠한 어려움과 두려움에도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다. 하지만 만나지 못한 이들은 예수님보다는 다른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평안함을 얻지 못한다. 계속해서 다른 일들로 계속된 고통의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안에 진정한 평안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평안하냐? 물으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야기 하겠는가?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모르니 그냥 지나쳐 버리겠는가? 아니면 경험함으로 지나치지 않고 평안함으로 그 발에 입맞추겠는가? 우리가 그 피묻은 발 앞에 엎드리고 예수님을 만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하여 말씀을 보고 기도하며 인격적인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결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러한 주님을 향하여 내가 주님을 만나 평안합니다. 말할 수 있는가? 내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어 평안을 이야기 할 수 없다면 우리가 훈련되어져야 한다. 예수님을 향하여 기뻐뛰며 그의 주시는 평안함으로 의지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평안하냐? 우리가 그러한 예수님의 물음에 !!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평안합니다.” 고백할 수 있는 우리 지묘교회 중고등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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