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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39年 (昭和14)

  • 김학도
  • 조회 : 1190
  • 2017.09.03 오전 09:31



1939年 (昭和14) 

독일의 히틀러의 軍隊가 포란드 (Poland) 를 侵略함으로써 第2次 世界大戰이 始作되었다. 그 戰雲이 漸次 世界 全地域으로 옮겼다. 植民地 朝鮮은 日本商品의 消費場所로서, 그리고 軍需物質를 生産하여 調達하는 兵站基地의 役割을 擔當했다. 中日戰争을 일으킨 日本은 不足한 資源를 충당하려고 수많은 韓國人을 軍人으로서, 勞働者로서, 甚하게는 日本軍 慰安婦로서 侵略戰争에 動員했다. 年初부터 [朝鮮 徴發令 細則]을 公布實行하여 防空을 強化하는 한편, 警防團을 組織하여 韓半島를 戰時體制로 몰아넣었다. 臨時政府는 中國 重慶에서 韓國 青年 戰地 工作隊를 結成하여 향후에 대비했다.

國民徴用令 公布에 의하여 青壮年들이 志願兵, 徴用, 報國隊, 勤勞動員, 挺身隊 등의 이름으로 戰場에 끌려 나갔다. 1939年부터 1945年까지 強制動員된 韓國人 勞働者는 150萬 名 内外로 推算하고 있다. 韓國人 勞働者가 가장 많이 投入된 곳이 炭鑛이며, 다음이 金屬鑛山, 土木工事場, 軍需工場의 順이었다. 日本은 強制的으로 動員한 韓國人 勞働者들을 軍隊式으로 編成하여 統制했다. 作業場이 軍事施設工事의 경우에는, 逃亡防止를 위해 工事場 周邊에 高壓電流가 흐르도록 鐵条網을 둘러치기까지도 하였다. 工事가 끝난 뒤에는, 軍事機密漏洩을 防止한다는 理由로 勞働者들의 集團 虐殺까지도 하였다.

朝鮮總督府는 中日戰争의 長期化로 各種物質이 不足하게 되자, 못철사철판 등을 配給統制하고, 쌀을 軍糧米로 돌리기 위해 [하루 한 끼 죽運動]을 展開했다. 日本이 戰争物質 確保를 위해 太平洋 進出을 試圖하자, 英國美國이 이를 必死的으로 阻止했다. 여기에 對해 日本은 大々的으로 反米英運動을 展開했다. 石油資源이 바닥이 나자 木炭 自動車를 試運轉하며, 人力車와 카바이트 自動車가 登場했다. 總督府는 朝鮮 國防 婦人會와 朝鮮 儒敎聯盟을 結成하고, 國民精神 總動員 運動에 協力하도록 決議되었다.

戰時 總動員 體制下에 作家들이 皇軍 慰問 作家團을 發足했다. 고무의 生産이 不足하자 나막신, 짚신을 신도록 장려하고, 學生들의 校服은 國防色으로 統一되었다. [鬼畜米英撃滅]이란 슬로건 아래, 専門學校나 高等學校의 入學試験에서 英語科目이 撤廢되었다. 戰時 體制의 物質節約의 次元으로 女性의 파마와 男性의 長髪을 禁止하고, 男性은 거의 막깎이로 削髪했다. 11月에 總督府는 [朝鮮日報]와 [東亜日報]에 自進 廢刊을 勤告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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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39年 (昭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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