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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40年 (昭和15) 

  • 김학도
  • 조회 : 1161
  • 2017.09.03 오전 09:32



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40年 (昭和15) 

日本은 韓國人에게 銃을 주어 戰場에 내 세우면, 그 銃口를 日本人에게 겨눌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또 徴用으로 끌려간 韓國人 勞働者가, 파업이나 暴動을 일으킬 可能性을 排除하지 못했다. 그래서 韓國人에게 日本人과 韓國人은 같은 핏줄기, 같은 運命이며, 天皇의 赤子로서 天皇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점을 洗脳시킬 必要가 있었다. 그 무렵 日本은 선심을 보이듯이 [日鮮同祖同根論]을(注)展開하면서 [内鮮一體], [皇國 臣民化, 教育을 通하여 韓國人의 正體性 抹殺에 血眼이 되었다. 그 方法으로서 創氏改名을 實施하고, 韓國人의 姓과 이름을 日本式으로 바꾸도록 한 것이다. 臨時政府 傘下의 韓國 光復軍司令部가 國軍創設을 宣布하고, 中國政府는 光復軍의 中國戰線 参戰을 承認했다.

總督府는 朝鮮 映画令을 公布施行하고, 그 製作配給, 그리고 上映을 統制했다. 日本帝國의 皇國 臣民化 政策은 마침내 [朝鮮日報]와 [東亜日報]를 強制로 폐刊시켰다. 남은 新聞은 總督府 機関紙의 [毎日新聞]뿐이었다. 朝鮮史 編集會가 1925年(大正14)에 [朝鮮史] 編集에 着手한 지 15年 만에 全37巻을 完刊했다. 朝鮮語學會가 [한글 文法統一案]에 이어 [外来語 表記 統一案]을 發表하는 등, 日本帝國의 強占期에 民族語 保存에 바친 눈물겨운 熱情을 보였다. 이 해 總督府의 國民服令이 公布된 以後, 女性들의 服装으로 [일 바지](もんぺ)가 大大的으로 普及되기 시작했다.

[注] 日鮮同祖同根論:朝鮮과 日本의 先祖는 뿌리가 같다고 하는, 日本帝國의 植民地 統治를 合理化하려는 論理이다.

이러한 日本帝國의 同和政策은, 内鮮 總和의 段階를 넘어서 [内鮮一體]에 연결되었고, 그 實践的 課題로서 指示된 가운데서 가장 代表的인 것이 創氏改名, 内鮮結婚, 宮城参拝, 日本語 常用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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