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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41年 (昭和16) 

  • 김학도
  • 조회 : 1164
  • 2017.09.03 오전 09:33



1941年 (昭和16)

美國 時間으로 이 해 12月 7日 日曜日 아침, 日本軍이 하와이 真珠湾에 停泊하고 있는 美國 第7艦隊를 奇襲 攻撃함으로, 마침내 太平洋 戰争이 勃發했다. 이에 앞서 日本은 이 해 7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首都를 掌握한 後, 네덜란드가 支配하고 있던 東인도 諸島를 征服하려 했다. 미국이 이를 警告했지만 日本이 들어주지 않아 미국은 自國内의 日本의 資産을 凍結하고, 石油輸出을 全面凍結했다. 日本内 強硬派가 穏健派 總理를 몰아내고 軍部의 陸軍 大将 토죠히데키(東條英機)를 總理로 세우고 太平洋 戰争을 挑發했다. 真珠湾 奇襲을 받은 美國은 다음 12月 8日에 對日 宣戰布告를 했다. 大韓民國 臨時政府도 [對日 宣戰 聲明書를 發表하고 全面戰을 布告했다. 또 [韓日併合]의 無効를 主張하고, [最後의 勝利를 얻을 때까지 血戰한다]는 것을 밝혔다.

總督府는 朝鮮 思想犯 予防 拘禁令을 公布하여, 韓國人의 입과 귀는 물론 정신까지 統制했다. 또 總督府는 學徒 挺身隊를 組織하고 學生들을 勤勞 報國隊에 動員하여, 朝鮮 臨戰 報國團을 結成하고 日本의 侵略 戰争 兵站基地로 만들었다. 日本은 太平洋戰争을 挑發해 놓고서 이 戰争을 [西洋對東洋][白色人種對黄色人種]의 對決로 바꿨다. 이 戰略은 먹혀들어 一部의 韓國人들조차 여기에 積極 呼應했다. [米英撃滅]의 美名下에 韓半島도 마침내 太平洋 戰争의 狂風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朝鮮 總督府는 生活必需 物質統制令으로 直接 物資管理애 나섰다. 石油 不足으로 서울市街에도 木炭車가 登場할 정도였다. 總督府는 쌀값을 安定시키고 軍糧米를 確保하려고 쌀 供出制度를 施行했다. 이 해 總督府는 全體의 쌀 生産量의 42%를 供出로 끌어 모았지만, 總督府가 支給한 供出米의 가격은 市場 가격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에 農民은 供出 대기를 꺼렸다.

거기에다 總督府가 支給하는 쌀값조차도 強制貯蓄 등으로 控除되어, 農民은 二重으로 収奪을 당한 立場이었다. 強制 供出로써 나라에 쌀을 빼앗긴 農民은 쌀 대신에 満州産의 大豆粕(콩깻묵)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쌀뿐만 아니라 놋쇠그릇, 건초 가마니, 노끈, 소 등도 공출했다.

總督府는 文人들의 思想을 統制할 目的으로 各種 協會를 結成시켰다. 그 後 이들의 組織을 親日 前衛隊로서 앞세워, 朝鮮 青年을 日本帝國의 총알받이로 몰아넣고 戰争을 讃揚하도록 했다. 文化界뿐만 아니라 教育界, 宗教界도 例外는 아니었다. 4月 1日, 總督府는 小學校의 聯盟을 國民學校로 바꿨다. 이는 [國民練成]과 [内鮮一體]에 맞는 措置였다. 總督府는 마지막으로 남은 文藝誌 등을 廢刊시킴으로 해서, 尹東柱와 李陸史처럼 氣概를 지키고 抵抗하여 獄死한 文人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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