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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23 年 (大正12)

  • 김학도
  • 조회 : 1134
  • 2017.08.30 오후 07:23

1923年 (大正12)

大韓民國 臨時政府 大統領 李承晩이 國際聯盟에 韓國을 委任統治하여 주도록 請願書를 提出했다. 이 事實이 드러나고 臨時 議政府에서 不信任을 받은 뒤 臨時政府는 큰 內訌에 휩싸였다. 1월 3일 臨時政府 內紛收拾 때문에 國民代表會가 열렸는데, 臨時政府內의 改造派와 創造派가 심한 分裂만 再確認했다.

日本政府는 関東大地震으로 인한 民心 動揺를 막기 위해, [朝鮮人들이 暴徒로 변하여, 우물에 毒薬을 넣고 放火와 略奪을 한다] 라고 하는 流言蜚語를 흘리며, 韓國人 数千 名이 日本人의 손에 의하여 대량 虐殺되었다. 9月2日、無政府主義者 朴烈이 日本人 妻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協力을 얻어, 日本 天皇과 皇太子 暗殺을 꾀한다는 嫌疑로 東京에서 檢擧되었다.

臨時 議政府는 李承晩 大統領 彈劾 法案을 可決시켜 第二代 大統領에 朴殷植을 選出했다. 國内에서 警察署 襲撃 등 爆弾테러가 頻繁하게 일어났다. 朝鮮 總督府는 獨立運動者의 國内潜入을 막기 위해서 各地에 外事 警察課를 新設했다. 申采浩는 金元奉의 부탁으로 [朝鮮革命宣言書]를 썼다. 이 宣言書의 “暴力은 우리 革命의 唯一한 武器다. 우리는 民衆 속에 들어가 民衆과 손을 잡고, 한없는 暴力, 暗殺, 破壊, 暴動에 의하여 强盜 日本의 統治를 破綻시키고…]와 같은 文件은, 韓國 獨立運動史에 남을 名文이었다.

曺晩植 등 經濟界, 敎育界 人士가 組織한 朝鮮物産獎勵運動이 全國으로 擴散되었다. 民族資本育成과 自立經濟를 앞세운 이 運動에는 各界各層이 골고루 參與하였다. 民衆의 呼応度가 높아서, 韓國人이 만든 物品은 없어서 못 파는 것도 있었다. 또 社會運動家와 賤民指導者들이 [朝鮮衡平社]를 結成하고 身分의 차이에 의한 社會 生活上 不利益을 당하지 않도록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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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帝의 植民地 統治實態 1923 年 (大正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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